100년 전 성북구 상월곡동, 흙 속에서 되살아난 삶의 숨결
- 서울 HI
- 4월 5일
- 2분 분량
"이 흙속에서 백년 전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발굴 삽이 땅을 파고들 때, 단순한 유물이 아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문이 열린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최근 성북구 상월곡동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1912년, 그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았습니다.

1. 논에서 발견된 백년 전 농부의 땀방울
발굴 첫날, 100,007㎡에 달하는 넓은 논 21개 필지의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진흙 속에서 쌀 낟알과 농기구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죠. 특히 볍씨가 남아있는 진흙 덩어리는 마치 백년 전 농부의 땀방울이 스민 듯 생생했습니다.
논둑을 따라 발견된 정교한 도랑 구조는 당시의 체계적인 농업 시스템을 보여주었고, 물길을 관리했던 목제 수문은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아마도 해가 뜨기 전부터 일을 시작했겠죠. 볏단을 지고 걸어다니던 발자국까지 상상이 됩니다." 현장 학자의 말에 발굴팀 모두가 과거의 풍경을 머릿속에 그려보았습니다.
2.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35개 필지의 집터
14,786㎡ 대지에서 발견된 35개 필지의 집터는 조선 시대 서민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전해주었습니다. 기와 조각과 흙벽돌, 부러진 항아리들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한 필지에서는 '박씨'라고 새겨진 문패가 발견되어 당시 집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당 한가운데서 나온 우물 유적입니다. 우물 바닥에서 발견된 동전과 작은 유리구슬은 주민들의 소박한 소망이 담긴 유물이었습니다. "이 동전 하나로 백년 전 아이의 생일선물을 상상해보세요.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을 거예요." 발굴팀원의 말에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3. 산기슭에 숨겨진 1필지의 비밀, 임야
6,694㎡의 임야 1필지는 의외의 발견을 안겨주었습니다. 산기슭에서 나온 목제 토기와 장작더미 흔적은 이곳이 나무를 하던 장소였음을 알려주었죠. 특히 소나무 뿌리 아래서 발견된 화로 자리는 잃어버린 역사의 조각을 찾은 듯한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이 화로 주변에서 모여 앉아 추운 겨울을 나았을 사람들. 그들이 나눈 이야기가 바람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아요." 발굴팀원의 말에 모두가 잠시 침묵에 빠졌습니다.
4.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72,172㎡ 밭
38개 필지의 밭 유적에서는 다양한 농작물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메밀과 조, 팥 씨앗살이 남아있는 흙덩어리에서 당시 식생활을 엿볼 수 있었죠. 특히 두둑을 만든 흔적은 곡식을 보호하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한 필지 경계석에는 '이씨'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어, 이곳이 특정 가문의 소유였음을 짐작케 했습니다. "이씨 가문은 아마도 이 밭에서 수많은 추수를 하며 대를 이어왔을 겁니다. 그들의 역사가 이 돌에 새겨져 있죠."
5. 이씨와 박씨, 땅을 통해 본 씨족의 역사
발굴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은 12필지의 이씨와 11필지의 박씨 소유 경계석이었습니다. 같은 마을에서 경쟁하며 공존했을 두 씨족의 이야기가 경계석 하나에서부터 시작되었죠. 이씨 필지에서는 종갓집의 흔적이, 박씨 필지에서는 상업 활동의 증거가 발견되어 서로 다른 성씨의 생활 방식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씨족이 함께 살아가며 마을을 만들었을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경쟁도 했지만 협력도 분명 있었을 거예요."
땅은 기억한다, 발굴을 마치며
발굴 조사를 마친 후, 저는 흙을 손에 쥐고 백년 전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땅의 한 줌에는 논을 갈던 농부, 집을 지으러 웃던 가족, 산에서 나무를 하던 이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습니다. 상월곡동 발굴은 단순한 유물 발굴을 넘어, 우리 선조들의 삶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발굴 현장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땅속에 묻힌 역사를 찾는 일은 끝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선조들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계속 귀를 기울이라 속삭입니다. 땅은 기억하고, 우리는 그 기억을 되살려 현재를 살아가는 힘을 얻습니다.
P.S. 성북구 상월곡동 발굴 현장은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물 전시회를 통해 발견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역사의 숨결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면 전시회 장소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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